본문으로 건너뛰기
유진 벨 초상유진 벨(배유지) 20세기 초 초상 — 남장로회 호남 선교 자료(공개). 학생 탐구 제출본

유진 벨

Eugene Bell · 1868–1925 · 미국

남장로회전도 · 교육광주·목포

목포에서 시작해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 선교를 개척한 남장로회 선교사. ‘배유지’로 불렸다.

이야기

유진 벨, 한국 이름 배유지는 미국 남부에서 자란 선교사였다. 그는 남장로회의 부름을 받아, 아직 선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조선의 남쪽 땅으로 향했다. 1895년 그는 입국했다.

그가 자리 잡은 곳은 호남이었다. 먼저 목포에서 사역을 시작했고, 뒤에 광주로 거점을 옮겨 그 일대 선교를 일구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남녘은, 아직 복음이 낯선 땅이었다.

낯선 땅에서의 사역은 외롭고 더뎠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고, 신뢰를 쌓고, 한 사람씩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 갔다. 빠른 성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일이었다.

그의 삶에는 개인적인 슬픔도 깊었다. 먼 타국에서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선교의 자리는 늘 헌신만이 아니라 상실도 함께 따랐다.

그가 광주에 놓은 토대 위에서, 호남의 교회와 학교와 병원이 자라났다. 한 사람이 남녘 땅에 뿌린 씨앗이, 그 지역 기독교의 뿌리가 되었다.

그는 화려한 중앙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 가지 않던 변두리를 택했다. 그 묵묵한 선택이 오늘 호남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걸어온 사역
  • 1895년 남장로회 선교사로 입국, 목포에서 선교를 시작
  • 1904년 광주로 거점을 확장 — 호남(광주·전남) 선교의 개척자
  • 교회·학교·병원을 함께 세우는 양림동 선교기지를 구축
  • 사위 린튼(인돈) 등으로 이어지는 호남 선교 가문의 출발점
남긴 열매

그가 개척한 광주·목포 선교부에서 수많은 교회와 학교(수피아·숭일)가 자라났고, 후손과 동역자(오웬·서서평·린튼)로 이어진 헌신은 오늘날 유진벨재단의 대북 인도지원으로도 흐른다.

Korea is home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입국
1895년
소속
남장로회
사역
전도 · 교육
대표 업적
호남 선교 개척
심화 연구 · 학생 탐구물 근원을 고쳐라 — 유진 벨, 호남을 품다이야기 읽기 →

참고 출처

  • 한국 기독교의 역사 I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외부 링크

사진 출처: 유진 벨(배유지) 20세기 초 초상 — 남장로회 호남 선교 자료(공개). 학생 탐구 제출본 (CC/PD)

이 페이지 인용하기

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유진 벨 (Eugene Bell, 1868–1925)」.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eugenebell (열람: 2026. 7. 4.)

잠시, 묻는 자리

유진 벨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