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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원

Clement C. Owen · 1867–1909 · 미국

남장로회 의료의료 · 목회광주·목포

의사이자 목사로 목포·광주에서 의료 선교를 하다 1909년 순직한 남장로회 선교사. 광주 양림동 선교사묘역에 처음 안장되었고, 오웬기념각으로 기려진다.

이야기

클레멘트 오웬, 한국 이름 오기원은 미국에서 의학과 신학을 함께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는 의사이자 목사였다. 몸을 고치는 일과 마음을 돌보는 일, 그 둘을 한 사람이 함께 짊어진 것이다.

그는 남장로회의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와 호남으로 향했다. 목포에서 의료 선교를 시작했고, 뒤에 광주로 사역을 넓혔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동시에 복음을 전했다.

호남의 사역은 고됐다. 의사가 닿아야 할 곳은 멀리 흩어져 있었고, 길은 험했다. 그는 아픈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1909년, 그는 멀리 떨어진 환자를 보러 가던 길에 자신이 병을 얻었다. 환자를 돌보려던 그 발걸음이 그의 생명을 가져갔다. 그는 마흔둘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광주 양림동의 선교사 묘역에 처음으로 안장되었다. 그가 사랑한 땅, 그가 일하던 곳에 그는 묻혔다. 사람들은 훗날 그를 기려 오웬기념각을 세웠다.

그는 환자에게로 가던 길에서 멈춘 사람이었다. 자신을 돌보는 대신 남을 돌보다 쓰러진 그 모습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가장 잘 말해 준다.

걸어온 사역
  • 1898년 의사이자 목사로 목포에서 의료 선교를 시작
  • 1904년 광주로 사역을 확장, 진료와 복음 전도를 병행
  • 1909년 순회전도 중 과로·폐렴으로 순직, 광주 양림동 묘역에 처음 안장됨
남긴 열매

그를 기려 세운 오웬기념각은 광주 선교기지의 상징이 되었고, 그의 순직은 동료 선교사들(유진 벨·서서평)의 헌신을 더욱 굳게 했다. 양림동 묘역의 첫 안장자로서 호남 선교사들의 ‘디딤돌’이 되었다.

Korea is home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입국
1898년
소속
남장로회 의료
사역
의료 · 목회
안장
광주 양림동(첫 안장)

연표

  1. 1898

    목포에서 의료 선교

  2. 1904

    광주로 사역 확장

  3. 1909

    순직, 양림동 안장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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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오기원 (Clement C. Owen, 1867–1909)」.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owen (열람: 2026. 7. 4.)

잠시, 묻는 자리

오기원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