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에서 활동한 남장로회 선교사로, 신사참배를 거부해 추방됐다가 광복 후 돌아와 교육 재건에 헌신했다.
윌리엄 린턴, 한국 이름 인돈은 미국에서 자란 청년이었다. 그는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조선으로 떠났다. 1912년, 그는 호남의 선교사가 되어 새로운 땅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호남에서 가르치고 전도하며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살며, 학교를 돌보고 교회를 섬겼다. 그는 그 땅을 자신의 자리로 받아들였다.
시대가 어두워졌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신앙 양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던 그는 거부했다. 그 거부의 값은 추방이었다. 1940년, 그는 그토록 오래 일한 땅에서 쫓겨났다.
사랑하던 자리에서 떠나야 하는 일은 쓰라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앙을 굽혀 자리를 지키는 대신, 자리를 잃더라도 신앙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광복이 오자,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추방의 아픔에도 그는 이 땅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무너진 교육을 다시 세우는 일에 헌신했고,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를 일구는 데 마지막 힘을 쏟았다.
그는 떠밀려 나갔다가 스스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한 번 등진 적 없는 그 한결같음이, 그를 한국 교육과 신앙의 든든한 일꾼으로 남게 했다.
- 1912년 호남(군산·전주·대전) 선교 시작
- 교육 사역 — 훗날 대전 대학(한남대) 설립으로 이어짐
- 1940년 신사참배 거부로 추방, 1946년 복귀해 교육 재건
신사참배 거부로 신앙 양심의 본을 보였고, 광복 후 대전에 대학(한남대)을 세워 호남·충청 기독교 교육의 토대를 놓았다. 린튼 가문 4대 한국 헌신으로 이어졌다.
연표
- 1912
호남 선교 시작
- 1940
신사참배 거부로 추방
- 1946
광복 후 한국 복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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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인돈 (William A. Linton, 1891–1960)」.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linton (열람: 2026. 7. 4.)
인돈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