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마포삼열 초상Wikimedia Commons

마포삼열

Samuel A. Moffett · 1864–1939 · 미국

북장로회교육 · 전도평양
이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이 전혀 없다는 것 — 이들이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첫인상을, 시간이 갈수록 지울 수 없었다.
1890년 내한 직후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 보낸 첫 보고

1890년 입국해 평양을 거점으로 북장로회 선교를 이끈 인물.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세워 한국인 목회자를 길러냈고, 서북 지역 교회 성장의 토대를 놓았다.

이야기

마포삼열, 본래 이름 새뮤얼 모펫은 미국 인디애나의 신앙 깊은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학생 시절부터 해외 선교에 마음을 두었고, 스물여섯이 되던 1890년 조선에 들어왔다.

그가 자리를 잡은 곳은 수도 서울이 아니라 북녘의 평양이었다. 평양은 당시 복음에 거센 적대를 보이던 곳이었다. 그는 환영받지 못했고, 위협을 받기도 했다. 낯선 청년 선교사에게 그 땅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살며 신뢰를 쌓아 갔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의 사역은 단번의 성과가 아니라 오랜 인내로 이루어졌다.

그가 가장 마음을 쏟은 일은 조선인 목회자를 길러내는 것이었다. 선교는 외국인이 영원히 떠맡을 일이 아니라, 결국 그 땅의 사람들이 이어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평양에 장로회신학교를 세웠다.

1907년, 그 신학교에서 길선주를 비롯한 한국인 첫 목사 일곱 사람이 안수를 받았다. 외국인 선교사가 아니라 조선 사람이 조선 교회를 이끄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가 바라던 바로 그 일이었다.

평양에서 보낸 긴 세월 끝에, 서북 지역은 한국 교회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중심에 서기보다, 조선 사람들이 일어설 발판을 놓는 데 평생을 썼다.

걸어온 사역
  • 1890년 입국, 평양을 거점으로 북장로회 서북 선교를 개척
  • 190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 설립 — 한국인 목회자 양성의 산실
  • 1907년 한국 최초 목사 7인 안수, 사경회·네비우스 자립 선교를 적용
  • 숭실학당 등 교육사역을 지원하며 50년 가까이 한국에서 헌신
남긴 열매

그가 세운 평양신학교에서 한국 장로교 목회자 대다수가 배출되었고, 1907년 대부흥과 자립·자전·자치의 토착 교회 원리가 그의 사역 위에서 꽃피었다. 길선주 등 한국인 지도자가 그의 동역자로 일어섰다.

입국
1890년
소속
미국 북장로회
사역
교육 · 전도
대표 업적
평양 장로회신학교

관련 영상

조선을 사랑한 선교사 12 — 사무엘 모펫(마포삼열) · 조선을 사랑한 선교사

참고 출처

  • 한국 기독교의 역사 I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외부 링크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CC/PD)

이 페이지 인용하기

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마포삼열 (Samuel A. Moffett, 1864–1939)」.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moffett (열람: 2026. 7. 4.)

잠시, 묻는 자리

마포삼열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