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media Commons“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올시다.”
평양 장대현교회를 이끌며 1907년 대부흥을 주도한 한국인 목사. 첫 장로교 목사 7인 중 한 사람이자 3·1운동 민족대표였다.
길선주는 평양에서 자란 조선 사람이었다. 그는 본래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한때 그는 도(道)를 구하며 다른 길을 깊이 좇던 사람이었다. 진리를 찾는 그의 갈망은 컸으나, 그 갈증을 채울 길을 오래 찾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복음을 만났다. 그가 그토록 찾던 것이 그 안에 있었다. 그는 마음을 다해 신앙을 받아들였고, 한 사람의 조선인 신자가 되었다. 받은 자가 곧 전하는 자가 되었다.
1907년, 그는 한국 장로교회의 첫 목사 일곱 사람 가운데 하나로 안수를 받았다. 외국인 선교사가 아니라 조선 사람이 조선 교회의 목사가 된 것이다. 그는 평양 장대현교회를 이끌었다.
같은 해, 평양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다. 한 집회에서 길선주가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고백하자, 그 정직한 회개가 사람들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무리가 함께 울며 회개했다. 그는 그 대부흥의 한복판에 있었다.
시대는 더 어두워졌다.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날 때, 그는 민족대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신앙과 겨레의 일이 그의 삶에서 둘이 아니었다.
그는 먼 데서 온 선교사가 아니라, 이 땅에서 나고 자라 복음을 받은 조선 사람이었다. 받은 것을 같은 동포에게 전하고,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과 함께 겨레의 짐을 졌다. 한국 교회는 그렇게 제 사람을 통해 일어섰다.
- 평양 장대현교회를 이끈 한국인 목회자
- 1907년 한국 장로교 최초 목사 7인 중 한 사람으로 안수
-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주도 — 공개적 회개와 새벽기도의 불씨
-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그가 시작한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는 한국 교회의 영적 전통이 되었고, 1907년 대부흥은 한국 교회의 자립과 성장의 원천이 되었다. 민족대표로서 그는 신앙과 민족애를 하나로 보여주었다.
연표
- 1907
첫 한국인 목사 7인 안수
- 1907
평양 대부흥 주도
- 1919
3·1운동 민족대표
관계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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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주(동아일보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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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주(조선일보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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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주 목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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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길선주 (Gil Seon-ju, 1869–1935)」.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gilseonju (열람: 2026. 7. 4.)
길선주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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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