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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 초상Wikimedia Commons

호머 헐버트

Homer B. Hulbert · 1863–1949 · 미국

북감리회교육 · 한글한양 · 정동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 — 1949년 귀환 소감 · 양화진 묘비

육영공원 교사로 입국해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 독립을 도운 선교사.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인물로 불린다.

이야기

호머 헐버트는 미국에서 자란 청년이었다. 그는 조선 정부가 세운 근대 학교 육영공원의 교사로 초청받아, 1886년 조선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선교라기보다 가르치는 일로 온 셈이었다.

조선에 와서 그는 한글을 만났다. 그는 이 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뛰어난지를 알아보았다. 정작 조선 사람들조차 한문에 밀려 한글을 낮게 보던 때에, 그는 한글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려 했다.

그는 한글로 세계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펴냈다. 조선의 아이들이 한글로 세상을 배우게 한 것이다. 그는 가르치는 사람이었고, 그 가르침을 조선의 말과 글에 담으려 했다.

시대가 어두워지면서 그의 일은 교실 밖으로 번졌다. 조선이 주권을 잃어 가자,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1907년 헤이그에 특사가 파견될 때 그는 그 일을 도왔고, 조선의 억울함을 세계에 알리려 애썼다.

그 일로 그는 결국 조선에서 추방당했다. 그토록 사랑한 땅에서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멀리서도 한국을 잊지 않았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는 말이 그를 따라다녔다.

훗날 노년에 그는 다시 한국 땅을 밟았고, 이 땅에 묻히기를 바랐다. 그는 영웅이 아니라, 한 나라의 글과 운명을 진심으로 사랑한 한 교사였다. 그 사랑이 국경을 넘었다.

걸어온 사역
  •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입국
  • 1889년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 저술 — 한글로 쓴 최초의 세계지리 교과서
  • 한글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알리고 한국학을 연구
  • 1907년 헤이그 특사 지원 등 독립운동을 도와 일제에 의해 추방됨
남긴 열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그는 한글 보급과 독립운동으로 한국인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고, “웨스트민스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 원한다”는 유언대로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Korea is home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입국
1886년
소속
북감리회
사역
교육 · 한글 · 독립운동
대표 업적
육영공원 · 사민필지
심화 연구 · 학생 탐구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 사람이야기 읽기 →

연표

  1. 1886

    육영공원 교사로 입국

  2. 1889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

  3. 1907

    헤이그 특사 지원

관계

관련 영상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선교사 헐버트 (다큐ON)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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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호머 헐버트 (Homer B. Hulbert, 1863–1949)」.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hulbert (열람: 2026. 7. 4.)

잠시, 묻는 자리

호머 헐버트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