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이 호머 헐버트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인터뷰입니다. 실제 발언 기록이 아닙니다.
- Q1.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앞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나는 호머 헐버트입니다. 미국 버몬트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다가, 스물세 살에 조선의 부름을 받고 이 나라에 왔습니다. 육영공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글로 책을 쓰고, 이 나라의 역사를 정리하고, 끝내는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조금이나마 애썼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선교사이자 교사, 학자라 부르지만, 나 스스로는 그저 한국의 벗이고 싶었습니다.
- Q2.낯선 조선까지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신학교에 다니던 무렵, 조선이 서양 학문을 가르칠 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나라가 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다만 젊은 마음에,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먼 곳에 내가 쓰일 자리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태평양을 건넜고, 그 결정이 내 평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 Q3.육영공원에서의 나날은 어떠셨습니까?
- 조선 임금이 세운 첫 근대식 관립학교였으니, 그 자체로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양반 자제와 젊은 관리들에게 지리와 역사, 수학을 영어로 가르쳤지요. 다만 솔직히 말하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의도 고르지 않았고, 학교를 떠받쳐야 할 지원도 흔들렸습니다. 학교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나는 그곳에서 조선말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 Q4.『사민필지』는 어떻게 쓰시게 되었습니까?
- 조선말을 배우면서 나는 이 나라의 글자에 놀랐습니다.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문자입니다. 그런데 정작 조선의 지식층은 한자만 높이고 한글을 낮추어 보더군요. 나는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선비든 백성이든 누구나 세계를 알 수 있도록, 순 한글로 세계지리 교과서를 썼습니다. 세계라는 넓은 곳을, 조선 사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자로 열어 보이고 싶었습니다.
- Q5.조선의 노래까지 악보로 남기셨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부르던 아리랑을 서양식 악보에 옮겨 보았습니다. 입에서 입으로만 흘러 다니던 가락이 언젠가 사라질까 아까웠으니까요. 나에게 조선은 연구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문화였습니다. 언어와 역사, 음악과 풍속 모두가 기록되고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 Q6.임금의 밀사가 되신 일은 두렵지 않으셨습니까?
- 왜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나라를 잃어 가는 이의 곁에서 세계를 향해 목소리를 내 줄 사람이 필요했고, 마침 나에게 그 언어와 그 통로가 있었습니다. 고종 황제께서 나를 믿어 주셨으니, 나는 그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인 내가 감당할 몫이 있다면, 기꺼이 감당하려 했습니다.
- Q7.헤이그에서의 일을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 쓰라립니다. 세 분의 특사와 함께 온 세계에 조선의 억울함을 알리려 했지만, 우리는 회의장 문 앞에서 가로막혔습니다. 이준 특사께서는 그 먼 땅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힘없는 나라의 진실은 문턱을 넘지 못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지금도 믿습니다. 그날의 외침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다고. 진실은 언젠가 제 자리를 찾습니다.
- Q8.조선에서 추방되다시피 미국으로 돌아가신 뒤에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몸은 미국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한국에 있었습니다. 강연을 하고 글을 쓰며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습니다. 다시 그 땅을 밟고 싶었지만, 식민지가 된 나라는 나를 쉽게 받아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기다렸습니다. 언젠가 그 나라가 다시 제 이름을 되찾는 날을, 아주 오래 기다렸습니다.
- Q9.그토록 한국을 사랑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 글쎄요. 사랑에 반드시 까닭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배우면 배울수록 이 나라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할수록 더 깊이 배우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하나의 일이었습니다. 책을 쓰고, 잡지를 펴내고, 바다를 건너는 일 말입니다.
- Q10.마지막으로 오늘의 한국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이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했고, 다행히 그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여러분이 한글로 세계를 배우고 여러분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부디 여러분의 나라를, 내가 사랑했던 것보다 더 깊이 사랑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