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북감리회 여선교사로 내한해 이화학당 제3대 당장을 지냈다. 약 15년 재임 동안 교과를 개편하고 1904년 정부 인가 4년제 중등 과정을 세웠으며, 룰루 프라이와 함께 한국어 최초의 생리학 교과서(1899)를 편찬했다. 1909년 콜레라로 별세해 양화진에 안장됐다.
배의례는 1892년 북감리회 여선교사로 조선에 왔다. 그가 맡은 곳은 메리 스크랜튼이 시작한 이화학당이었다. 창립자의 뒤를 이어, 그는 이 학교의 제3대 당장이 되었다.
그는 약 십오 년을 그 자리에서 보냈다. 짧게 거쳐 가는 자리가 아니라, 학교의 뼈대를 세우고 다듬는 긴 책임이었다. 교과를 새로 짜고, 배움의 수준을 한 단계씩 끌어올렸다.
1904년, 그는 정부의 인가를 받은 사 년제 중등 과정을 세웠다. 소녀들의 배움이 정식 교육으로 인정받는 길을 연 것이다. 여성 교육이 제도의 자리를 얻어 가는 한 걸음이었다.
그는 가르칠 책도 직접 마련했다. 동료 룰루 프라이와 함께 한국어로 된 최초의 생리학 교과서를 펴냈다. 배울 책이 없던 곳에 책을 만들어 둔 것이다.
그러나 1909년, 그는 콜레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십오 년을 쌓아 올린 일을 더 이어가지 못한 채, 그는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창립자에게서 학교를 물려받아 그 기틀을 세운 사람이었다. 시작한 이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도 이어받아 다듬은 이의 수고는 흔히 잊히지만, 이화의 깊은 곳에 그의 십오 년이 새겨져 있다.
연표
- 1892
내한, 이화학당 제3대 당장
- 1899
한국어 최초 생리학 교과서 편찬
- 1904
정부 인가 4년제 중등 과정 설립
- 1909
콜레라로 별세, 양화진 안장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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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배의례 (Josephine O. Paine, 1869–1909)」.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paine (열람: 2026. 7. 4.)
배의례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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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