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media Commons (PD)일본을 거점으로 활동한 미감리회 선교사. 1884년 조선을 방문해 김옥균을 통해 고종에게 청원했고, 그해 7월 초 교육·의료 사업을 윤허받아 개신교 선교의 문을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듬해 아펜젤러·스크랜턴이 입국하면서 그의 윤허는 한국 개신교 선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로버트 매클레이는 조선에 오래 머문 사람이 아니다. 그의 자리는 바다 건너 일본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미감리회의 일본 선교를 이끌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그의 짧은 방문에서 한 매듭이 지어진다.
1884년, 그는 조선을 찾았다. 닫혀 있던 그 나라에서 선교란 아직 허락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알고 지내던 김옥균을 통해, 고종에게 조심스레 청을 넣었다.
그 청은 직접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의료의 사업을 펼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해 여름, 고종은 그 윤허를 내렸다. 굳게 닫혔던 문에, 작은 틈이 열린 순간이었다.
이 윤허가 없었다면, 이듬해의 일들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1885년, 아펜젤러와 스크랜턴이 조선에 들어와 학교와 병원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열린 그 틈 덕분이었다.
매클레이 자신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조선 땅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뒤이어 들어온 선교사들의 이름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길을 먼저 내야 했다. 직접 거두는 자리에 서지 않고, 뒤에 올 이들을 위해 문을 열어 둔 그 수고가, 한국 개신교 선교의 출발점에 조용히 놓여 있다.
연표
- 1824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생
- 1873
일본 요코하마 도착, 미감리회 일본 책임자
- 1884
조선 방문, 고종에게서 교육·의료 윤허 획득
- 1885
아펜젤러·스크랜턴 입국(그의 윤허에 따라)
관계
원본 사진 모음 · 4점
공개 자료에서 본인으로 확인된 사진입니다. 기본은 원본(흑백)이며, ‘컬러’를 누르면 같은 톤의 AI 복원본으로 봅니다.
Photo of Robert Samuel Ma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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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Robert Samuel Ma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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ロバート・S・マクレ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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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매클레이 (Robert S. Maclay, 1824–1907)」.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maclay (열람: 2026. 7. 4.)
매클레이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