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media Commons여의사로 입국해 명성황후를 진료했고, 언더우드와 결혼해 함께 사역하며 회고록을 남긴 여성 선교사.
릴리어스 호턴은 미국에서 의학을 익힌 여성이었다. 여성이 의사가 되기 어렵던 시절, 그는 그 길을 걸어 의사가 되었고, 그 기술을 들고 조선으로 향했다. 1888년, 그는 여의사로 입국했다.
그는 명성황후를 진료하는 일을 맡았다. 궁궐의 여성을 살피는 일은 남자 의사가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여의사인 그의 역할은 특별했다. 그는 궁중과 민간을 오가며 여성들을 돌보았다.
조선에서 그는 동료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를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은 부부이자 동역자로 함께 살았다. 언더우드가 번역과 교육과 전도에 매달릴 때, 그는 의사로서, 그리고 동반자로서 그 곁을 지켰다.
선교사의 아내이자 의사로 사는 삶은 두 몫의 짐을 지는 일이었다. 그는 진료하고, 가정을 꾸리고, 남편의 일을 도왔다. 그 모든 일이 늘 평탄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보고 겪은 조선에서의 삶을 글로 남겼다. 회고록 속에는 화려한 업적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한 여인이 겪은 일상과 어려움과 정이 담겨 있다.
그가 남긴 기록은 그 시대를 살아간 선교사들의 인간적인 결을 오늘에 전한다. 영웅의 무용담이 아니라, 한 사람의 눈으로 본 진솔한 이야기로서 말이다.
- 1888년 여의사로 입국, 명성황후 진료
- 1889년 언더우드와 결혼, 전국 순회전도 동행
- 회고록 등 기록으로 초기 선교를 증언
그녀의 진료는 왕실과의 신뢰를, 회고록은 초기 선교의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부부 선교사의 동역 모델을 보여준 인물이다.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연표
- 1888
여의사로 입국
- 1889
언더우드와 결혼
- 1904
회고록 집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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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릴리어스 호턴 (Lillias Horton Underwood, 1851–1921)」.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lillias (열람: 2026. 7. 4.)
릴리어스 호턴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