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새고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육영공원과 배재학당에서 가르친 교육 선교사. 여의사 애니 엘러스와 결혼해 함께 사역했다.
달젤 벙커는 미국에서 신학과 학문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그는 조선 정부가 세운 근대 학교 육영공원의 교사로 초빙되어, 1886년 헐버트 등과 함께 입국했다. 가르치는 일이 그의 첫 자리였다.
육영공원에서 그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학문을 가르쳤다. 이후 그는 배재학당의 운영에도 참여해, 교육 선교의 한 자리를 맡았다. 그의 일은 늘 학생들 곁에 있었다.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은 여의사 애니 엘러스였다. 같은 시기에 조선에 와 일하던 두 사람은 결혼해, 함께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사역했다.
두 사람의 삶은 한 사람의 큰 업적으로 기억되기보다, 부부가 나란히 한 땅에서 일한 동행의 이야기에 가깝다. 한 사람은 가르치고, 한 사람은 진료하며, 같은 부름을 나누어 졌다.
그는 떠들썩한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 학교를 돌보는 일—그 평범한 자리를 오래 지켰다.
조선에서 오래 일한 끝에, 그는 이 땅과 깊이 얽힌 사람이 되었다. 한 부부가 조용히 나누어 진 부름이, 가르침과 돌봄으로 이 땅에 남았다.
-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입국
- 배재학당 운영 참여, 영어·근대 교육
- 여의사 애니 엘러스와 결혼해 동역
그가 가르친 배재·육영공원의 학생들은 근대 한국의 지도자로 자랐고, 아내 애니와 함께한 교육·의료 사역은 부부 선교의 본이 되었다.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연표
- 1886
육영공원 교사로 입국
- 1894
배재학당 운영 참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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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달젤 벙커 (Dalziel A. Bunker, 1853–1932)」.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bunker (열람: 2026. 7. 4.)
달젤 벙커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