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Methodist reprint(원본 c.1886) · Internet Archive여의사로 입국해 명성황후의 시의로 활동했고, 정신여학교의 기틀을 놓은 여성 선교사. 벙커와 결혼했다.
애니 엘러스는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여성이었다. 본래 그는 더 멀고 어려운 선교지로 가려 했으나, 사정이 닿아 조선으로 길이 정해졌다. 1886년, 그는 여의사로 입국했다.
당시 조선의 궁궐에서도 여성을 진료할 의사가 필요했다. 남자 의사가 왕비의 몸을 살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명성황후의 시의가 되어 궁중을 드나들며 진료했다. 한 여성 의사의 존재가 닫혀 있던 문 하나를 연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궁궐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조선의 여성들이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가르침 없이는 삶도 바뀌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여성 교육에 힘을 쏟아, 훗날 정신여학교로 이어지는 배움의 자리를 일구었다. 진료하는 손과 가르치는 일을 함께 든 것이다.
그의 곁에는 교육 선교사 벙커가 있었다. 두 사람은 결혼해, 같은 땅에서 같은 부름을 나누어 졌다. 한 사람의 영웅담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걸은 긴 길이었다.
그가 진료한 왕비도, 그가 가르친 소녀들도 시대의 풍파를 겪었다. 그러나 여성도 치료받고 배울 수 있다는 그 작은 시작이, 조선 여성들의 앞에 새 길을 열었다.
- 1886년 여의사로 입국
- 1887년 명성황후의 시의(侍醫)로 활동
- 정신여학교의 기틀을 놓음
명성황후의 시의로서 왕실과 선교의 신뢰를 이었고, 정신여학교는 한국 여성 교육의 한 축이 되었다. 남편 벙커와 함께 교육·의료에 평생 헌신했다.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연표
- 1886
여의사로 입국
- 1887
명성황후 시의
- 1895
여성 교육 사역
관계
외부 링크
사진 출처: Korea Methodist reprint(원본 c.1886) · Internet Archive (CC/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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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애니 엘러스 (Annie Ellers Bunker, 1860–1938)」.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annie (열람: 2026. 7. 4.)
애니 엘러스의 삶에서,
당신은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꼈나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가지고 가세요 —
나라면 무엇에 내 삶의 값을 치르고 싶은가.
복음이라는 바통은, 이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