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인터뷰입니다. 실제 발언 기록이 아닙니다.
- Q1.선교사님이 어떤 분인지 소개해 주시겠어요?
-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 런던에서 온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입니다. 헌신적인 신앙을 지닌 집안에서 자라며 자연스레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어려서부터 선교사의 꿈을 품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그 꿈을 향해 공부에 매진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르심을 받아 조선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1885년 부활절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 조선 곳곳에서 여러 사역을 했습니다.
- Q2.조선으로 오시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 제가 해외 선교의 꿈을 품은 것은 네 살 때, 인도 선교사님의 강연을 들으면서였습니다. 오래도록 저는 인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조선의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지만 크게 마음이 가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어느 조선인이 보내온 호소문을 읽으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는 가겠지’ 하며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왜 너 자신이 가지 않느냐’는 물음이 마음에 울렸고, 그 즉시 조선 선교를 자원했습니다.
- Q3.은자의 나라로 향하며 두려움도 크셨을 텐데, 도착하던 날의 심정은 어떠셨나요?
- 제물포항은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그 안개 뒤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웠습니다. 조선은 소식을 들으려 해도 일본이나 중국을 거쳐야 하는 숨겨진 나라였고, 들려오는 소식도 밝지 않았습니다. 문을 굳게 닫은 그 땅에서 무엇이 어떻게 될지, 저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 Q4.그럼에도 무엇이 마음을 붙들어 주었습니까?
- 의사 알렌 선생을 도와 병원 일을 하면서,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말로만 듣고 상상만 하던 이들을 직접 만나니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지요. 병원에서 일하며 저는 교육 사역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지금 조선에 가장 필요한 것이 교육이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 Q5.성경 번역과 사전 편찬에 그토록 마음을 쏟으신 까닭은 무엇인가요?
- 사람의 손에 들린 성경책 한 권이 가장 훌륭한 설교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말로 전도하는 것이 금지된 땅에서, 저는 말씀을 조선의 말과 글로 옮기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조선어를 배우고, 문법서를 쓰고, 사전을 엮고, 번역위원회의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글이 남으면 사람이 떠난 뒤에도 복음이 남으니까요.
- Q6.고아원을 세우신 일은 어떤 마음에서였습니까?
- 전도가 막힌 상황에서, 저는 조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갈 곳 없는 아이들을 품기로 했지요.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저는 그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돌보았습니다. 그 작은 시작이 훗날 학교로 자라났으니, 저에게는 단순한 방편이 아니라 사랑의 자리였습니다.
- Q7.서른 해 동안 변해가는 조선을 보시며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 복음이 조금씩 퍼지고 사람들이 눈을 떠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희 선교사들만의 힘이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함께 이루어간 변화였습니다. 여행을 한 번 나서면 백 명이 넘는 이들을 만나 세례를 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 땅에 심긴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 Q8.교파를 넘어선 ‘하나의 교회’를 그토록 바라신 이유는요?
- 저는 대한장로교회나 대한감리교회가 아니라, 그저 ‘대한 그리스도 교회’ 하나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서양 교단의 분열까지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요. 제 아내는 저를 두고 제 존재의 모든 흐름이 연합을 향한다고 했는데, 부끄럽지만 맞는 말입니다.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다음 세대가 이어주기를 바랍니다.
- Q9.왜 조선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습니까?
- 형님은 이제 그만 미국에 돌아와 편히 지내자고 여러 번 권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제안을 단 한순간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의 선교는 저에게 십자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생명이요 기쁨이었고,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땅끝까지 이르러 말씀을 전하라는 그 일이, 제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습니다.
- Q10.생의 마지막, 무엇을 가장 그리워하셨나요?
- 미국의 집에서 저는 남대문 집 사진을 늘 머리맡에 두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숨쉬기조차 힘든 때에도 마음은 자꾸 한국으로 향했지요. 아내가 어디로 가고 싶으냐, 한국이냐 물었을 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땅이 제 마음의 고향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