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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Dreamy School

존 헤론 · 가상 인터뷰

드리미학교 ‘Missionaries from Aunae’ · AI 재현 인터뷰

시나리오 이로은 · 드리미학교 7기영상제작 이로은 · 드리미학교 7기

학생들이 헤론 선교사의 생애와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실제 발언 기록이 아닙니다.

Q1.선교사님, 먼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국 북장로회 의료 선교사 존 헤론입니다. 1885년 조선에 들어와, 알렌이 떠난 뒤 제중원을 맡아 환자를 돌보았습니다. 1890년 서울에서 이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Q2.미국에서 의사로 자리 잡을 수도 있었는데, 왜 조선으로 오셨나요?
저는 테네시에서 자라 뉴욕의과대학을 우등으로 마쳤습니다. 미국에서 의사로 편히 자리 잡을 길이 있었지만, 저는 북장로회 선교사로 조선에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조선에 파송된 첫 공식 의료 선교사였습니다.
Q3.언제, 어떻게 조선에 들어오셨습니까?
1885년 6월, 아내와 함께 제물포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Q4.제중원에서는 어떤 사역을 하셨나요?
알렌이 세운 제중원에서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저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돌보려 했습니다. 또 고종의 신임을 얻어 왕실의 시의(侍醫)로도 섬겼습니다.
Q5.전염병이 도는 위험 속에서도 환자를 떠나지 않으셨다고요.
그 위험을 피하기보다, 저는 끝까지 환자의 곁을 지키는 길을 택했습니다.
Q6.결국 그 일이 선교사님의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네. 저 자신도 환자를 돌보다 이질에 걸렸고, 1890년 여름 서른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Q7.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의 첫 안장자가 되셨습니다.
제가 떠난 뒤 외국인을 위한 묘지가 필요하다는 논의 끝에, 양화진에 외국인선교사묘원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첫 번째로 묻힌 사람이 되었습니다.
Q8.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제 삶은 짧았지만, 의술과 믿음으로 조선 사람들을 섬기려 한 그 마음만은 남기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셨다’—그 사랑이 저를 이 땅으로 이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