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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벨 · 가상 인터뷰

드리미학교 ‘Missionaries from Aunae’ · 윤드림 심층 연구

심화 이야기
시나리오 윤드림 · 드리미학교 8기영상제작 윤드림 · 드리미학교 8기

학생이 유진 벨의 선교 편지와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인터뷰입니다. 실제 발언 기록이 아닙니다.

Q1.선교사님,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입니다. 1895년 조선에 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목포와 광주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자 힘썼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Q2.그렇게 먼 조선까지 오게 되셨습니다. 무엇이 선교사님을 움직였습니까?
조선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많은 땅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그곳으로 부르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마음은 선교하는 내내 저를 붙들어 준 힘이었습니다.
Q3.도착하신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처음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조선은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있었고 백성들의 삶도 결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들의 진지함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보았고, 그 모습을 보며 이 땅에 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Q4.조선의 어떤 미래를 기대하셨습니까?
성경을 배우고 신앙을 배우려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조선 교회의 미래를 기대하게 되었지요. 저는 언젠가 조선의 교회가 스스로 서서 이 땅을 섬기게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Q5.희망을 품고 사역하셨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호남 지역을 다니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길은 험했고 교통도 불편했으며, 때로는 질병과 외로움 속에서 사역해야 했습니다. 사실 여러 번 실패가 거듭될 때는 많이 원망하기도 하고, 이곳이 제 자리가 맞느냐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다시 힘을 얻곤 했습니다.
Q6.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십니까?
모든 사역이 소중하지만, 목포에서 교회를 처음 세웠던 일을 특별히 기억합니다. 첫 정탐에서는 설사병으로, 두 번째 목포 길에서는 폭풍우로, 나주에서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번번이 서울로 돌아가야 했지요. 그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복음이 뿌리내리는 시작점이었습니다.
Q7.아내를 두 번이나 떠나보내시고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아내를 떠나보낸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었습니다. 한동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요. 그런데도 미국에 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네 선교지로 가라고, 거기가 네 자리 아니냐고, 한 번 맹세한 일 끝까지 하라고. 그래서 저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Q8.선교사님을 끝까지 움직이게 한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저를 움직인 것은 복음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삶에 새로운 소망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Q9.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말씀을 전하신다면요?
교회는 건물보다 사람을 세우는 곳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이웃을 섬기는 일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충실하기를 바랍니다.
Q10.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심은 것은 작은 씨앗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씨앗을 자라게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교회가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