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난 선교사 2세 의사. 해주에 결핵 요양원을 세우고, 1932년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해 결핵 퇴치 기금을 모았다. 회고록 『조선회상』을 남겼다.
셔우드 홀은 18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그가 처음 본 세상은 미국이 아니라 조선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평탄하지 않았다. 의사였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이 평양에서 환자를 돌보다 병을 얻어, 그가 갓난아이일 때 세상을 떠났다.
홀어머니 로제타 홀의 손에서 자란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컸다. 어린 시절 그는 곁에서 한 조선 소녀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전해진다. 그 기억이 그를 의사의 길로, 그리고 결핵과 싸우는 일로 이끌었다.
성장한 그는 의사가 되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부모가 살았고 아버지가 묻힌 그 땅으로, 이번에는 스스로의 부름을 따라 돌아온 것이다.
황해도 해주에 그는 결핵 요양원을 세웠다. 결핵은 그 시절 가난한 이들을 소리 없이 데려가던 병이었고, 치료에는 돈이 들었다. 기금을 모으기 위해 그는 1932년,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었다. 작은 우표 한 장에 담긴 마음이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너갔다.
훗날 그는 시대의 격랑 속에 한국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이 땅의 기억을 『조선회상』이라는 회고록에 남겼다.
그는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땅을 자신의 일터로 삼은 사람이었다. 한 세대의 헌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 드문 모습이다. 크리스마스 씰은 지금도 그 일을 기억하게 한다.
- 서울 출생 선교사 2세, 1926년 의료선교사로 귀환
- 1928년 해주 구세요양원(결핵 요양원) 설립
- 1932년 한국 최초 크리스마스 씰 발행 — 결핵 퇴치 기금 마련
- 회고록 『조선회상(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 저술
그가 시작한 크리스마스 씰은 오늘날까지 한국 결핵 퇴치 운동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해주 요양원은 한국 결핵 의료의 선구가 되었다.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조선을 집으로 삼았습니다.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연표
- 1893
서울에서 출생 (선교사 2세)
- 1926
의료 선교사로 귀환
- 1928
해주 구세요양원 설립
- 1932
한국 최초 크리스마스 씰 발행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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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셔우드 홀 (Sherwood Hall, 1893–1991)」.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sherwoodhall (열람: 2026.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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