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북감리회 선교사로 내한해 약 3년간 서울 배재학당 교사로 봉직한 뒤 1895년 평양으로 파송되어 평양·서울 지방 감리사로 오래 사역했다. 부인 매티 윌콕스 노블도 여성교육·성경학교 사업으로 활동했다. 1934년까지 한국에서 일했다.
노블, 한국 이름 노보을은 1892년 북감리회 선교사로 조선에 왔다. 처음 그가 선 자리는 서울 배재학당의 교단이었다. 약 3년 동안 그는 조선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 땅에 익숙해져 갔다.
1895년, 그는 평양으로 파송되었다. 서울을 떠나 서북의 도시로 향한 것이다. 그 무렵 평양은 선교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라나고 있었고, 노블은 그 한가운데서 오래 일하게 된다.
그는 평양과 서울 지방의 감리사로서, 교회를 세우고 교역자를 기르는 일을 맡았다. 한곳에 머무는 목회자가 아니라, 여러 교회를 돌보고 잇는 자리였다.
그의 곁에는 아내 매티 윌콕스 노블이 있었다. 그 역시 여성 교육과 성경학교 사업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부부가 각자의 일로 같은 선교를 떠받친 셈이다.
노블은 1934년까지, 사십 년 넘게 한국에서 일했다. 한 사람의 청춘과 장년이 통째로 이 땅에 바쳐진 것이다. 그가 처음 가르친 배재의 학생들은, 그가 떠날 무렵 이미 한 세대를 이루고 있었다.
짧게 스치는 손님이 아니라 오래 머문 사람이었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진 그 긴 사역이 한국 감리교의 자라남과 함께 있었다.
연표
- 1892
북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배재학당 교사
- 1895
평양 파송, 평양 지역 선교
- 1934
한국 사역 종료 후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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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노블(노보을) (William A. Noble, 1866–1945)」.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noble (열람: 2026. 7. 4.)
노블(노보을)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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