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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캠벨

Josephine E. P. Campbell · 1853–1920 · 미국

남감리회여성 교육한양 · 정동

중국 선교를 거쳐 1897년 내한한 남감리회 여선교사. 1898년 캐롤라이나학당(훗날 배화학당)을 세워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토대를 놓았고, 학당의 예배 모임에서 출발한 신앙 공동체는 오늘의 종교교회로 이어졌다.

이야기

조세핀 캠벨은 마흔이 넘어 조선에 왔다. 미국 남감리회 여선교사였던 그는 먼저 중국에서 사역하다, 1897년 조선으로 건너왔다.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한번 낯선 땅을 택한 것이다.

그가 마음을 둔 것은 여성의 배움이었다. 1898년, 그는 서울에 캐롤라이나학당을 세웠다. 훗날 배화학당으로 이어지는 이 학교가, 조선 여성들에게 근대 교육의 문을 열었다.

그 시절 여성에게 글과 배움은 흔히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 캠벨은 그 닫힌 문을 하나씩 열어, 소녀들이 사람으로 자라고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 사람의 결심이 여러 세대의 길을 바꾸는 일이었다.

학교 안에서 시작된 작은 예배 모임은, 신앙의 공동체로 자라났다. 오늘의 종교교회가 그 모임에서 비롯되었다. 배움과 믿음이 한자리에서 함께 자란 셈이다.

캠벨은 1920년 서울에서 생을 마쳤고, 양화진에 잠들었다. 중국과 조선, 두 나라에서 보낸 그의 후반생은 모두 가르치고 세우는 일에 바쳐졌다.

그가 세운 학교와 교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마흔을 넘겨 새 땅을 택한 한 여인이 뿌린 씨앗이, 오래도록 자라고 있는 것이다.

입국
1897년 (제물포)
소속
미국 남감리회 (여선교부)
사역
여성 교육 · 선교
대표 업적
배화학당 · 종교교회

연표

  1. 1897

    내한, 서울에 여성 선교 거점 마련

  2. 1898

    캐롤라이나학당(배화학당 전신) 설립

  3. 1900

    예배 모임 시작 — 종교교회의 모체

  4. 1920

    서울에서 별세, 양화진 안장

참고 출처

  • 한국 기독교의 역사 I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외부 링크

사진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CC/PD)

이 페이지 인용하기

Missionaries from Aunae (Dreamy School). 「조세핀 캠벨 (Josephine E. P. Campbell, 1853–1920)」. https://missionaries-khaki.vercel.app/people/campbell (열람: 2026.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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