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이 사애리시(앨리스 샤프)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인터뷰입니다. 실제 발언 기록이 아닙니다.
- Q1.조선 땅에 오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 사실 저도 제가 왜 조선에 왔는지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북감리회 해외여성선교부에서 조선으로 파송을 받았을 때, 저는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뚜렷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만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제가 조선에 온 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 땅에 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고 믿게 된 것이지요.
- Q2.낯선 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 무엇보다 언어의 벽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조선에 온 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웠지만, 한국어와 영어는 어순과 문장 구조가 완전히 달라 대화하고 전도하는 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아픈 이의 증상을 정확히 알아들어야 할 때 답답한 순간이 많았지요. 실수도 잦았지만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돕고 싶어 포기하지 않았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한국어로 전도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습니다.
- Q3.첫 사역이 여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고 들었습니다.
- 네, 조선에 와서 처음 맡은 일이 그것이었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사람이라면 더 크고 번듯한 일을 바랐을지도 모르지요. 저 역시 그런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그러나 저는 그 작은 일조차 하나님 나라의 전진을 돕는 특권이라 여기며 감사했습니다. 큰 무대를 기다리기보다 눈앞의 작은 교실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 그것이 제 사역의 시작이었습니다.
- Q4.남편 로버트 샤프 선교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제 삶의 한 부분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어요. 남편은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선교의 꿈을 나누던 가장 가까운 동역자였습니다. 우리는 조선에서 이루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그 모든 것이 갑자기 멈춰 버린 듯했지요.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외롭고 슬펐고, 때로는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여쭙기도 했습니다.
- Q5.그토록 큰 슬픔 속에서도 조선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 물론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낯선 땅에 홀로 남는 것이 두렵기도 했고요. 하지만 조선에서 만난 여성들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쉽게 떠날 수 없었습니다. 배울 기회조차 없는 이들이 많았고,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했지요. 저는 그들을 섬기러 이곳에 왔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슬픔을 품은 채,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 Q6.많은 사역 가운데 왜 여성 중심의 교육에 마음을 두셨나요?
- 조선에서 지내다 보니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여자아이들이 유독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자아이들에 비해 배울 기회가 훨씬 적었고, 재능을 펼쳐 볼 자리조차 얻지 못했지요. 배우고 싶어 하면서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소외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교육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나아가 가정과 사회까지 변화시킨다고 믿었기에, 여성 교육에 특별한 마음이 갔습니다.
- Q7.교육이 조선을 변화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셨나요?
- 저는 교육이 그저 글을 읽고 쓰는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교육은 한 사람의 생각과 삶을, 그리고 그가 속한 가정과 사회까지 바꾸는 힘을 지녔지요. 특히 여성 교육을 귀하게 여긴 까닭은, 한 여성이 변화되면 그 영향이 가정 전체로 이어지고 다음 세대까지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배우고 성장하면 자녀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저는 교육과 복음이 서로 나뉠 수 없다고 여겼고,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 Q8.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가장 크게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 한 청년이 저를 찾아와 자신을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그는 몇 해 전 제가 돌보았던 공주 박 씨의 조카라고 했어요. 그 무렵 그는 교인이 아니었고 바르지 못한 삶을 살았다는데, 삼촌이 크게 다쳤을 때 제가 아무 대가 없이 돌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교인이 되고 싶어졌다고요. 저는 그가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저 도움이 필요한 이를 섬겼을 뿐인데, 그 작은 섬김이 오래도록 한 사람의 마음에 남아 있었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일하신다는 것을 그때 깊이 느꼈습니다.
- Q9.유관순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시나요?
- 천안 지령리 교회 심방 자리에 동행하면서 그 아이를 처음 보았습니다. 가정과 됨됨이를 눈여겨보니 크게 쓰일 재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소개하고 더 큰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시골의 한 여자아이가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일이 그때는 흔치 않았지요. 그 아이가 훗날 어떤 사람이 될지는 저도 다 알지 못했지만,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분명했기에 길을 열어 주고 싶었습니다.
- Q10.조선에서 사역하시며 가장 소중히 여긴 가치는 무엇이었나요?
- 저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소중히 여겼습니다. 선교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큰 성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먼저 조선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달랐지만 진심으로 관계를 맺으려 애썼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여성과 아이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그 사랑과 존중이 선교의 시작이라고 여겼습니다.
